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이고 다카모리 (문단 편집) === 생존설 === 워낙 인기가 많아서 실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생존설이 [[러일전쟁]] 때까지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그중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 훗날 [[니콜라이 2세]]가 되는 니콜라이 황태자가 일본에 방문할 때 전국적으로 설이었는데, 구로다 기요타카가 유럽 각지를 순방할 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이고 다카모리와 기리노 도시아키를 만나 훗날 일본을 위해 함께 일할 것을 결의했고, 실제로는 사이고와 기리노, 무라타, 벳푸 같은 서남전쟁의 수뇌가 시로야마산에서 탈출해 [[러시아]] 군함을 타고 도주해 살아있으며 니콜라이 황태자와 함께 일본으로 귀환하여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일본 전역에서는 난리가 났고 환호와 의심이 뒤범벅이 된 가운데 신문사들은 검증도 안 된 소문을 사실인 양 마구 남발하여 혼란을 가중시켰다. 사이고의 출신지인 가고시마와 규슈에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환영무드가 조성될 정도. 여기에 메이지 덴노가 시중에게 "사이고가 돌아온다면 메이지 10년의 전투(세이난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자들의 훈장을 박탈하고 그를 맞이하겠다"고 말했다는 미확인 소문도 있어 경관인 쓰다 산조가 이를 두려워하여[* 쓰다는 서남전쟁에 종군하여 맹활약하여 훈7등을 수여받았으며 이것을 평생의 자랑으로 삼았는데, 훈장을 박탈당한다는 소문을 굳게 믿고 이에 대한 불안과 절망을 주변인들에게 한탄했다고 한다.] 니콜라이 황태자를 칼로 베는 [[오쓰 사건|황태자 암살미수 사건]]이 벌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생존설의 근거로는, 메이지 정부의 검시결과에는 사이고의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머리가 잘린 상태에서 [[고환]]이 부풀어오른 것을 보고 사이고 다카모리라고 판단했다. 잘린 머리는 며칠 후에 발견되었다. 다만, 고환이 부풀어오른 것은 이 지역의 [[풍토병]]의 후유증으로 당시에는 10명 중에 한 명이 이런 증세가 있어서, 사이고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학설이 있다(그 풍토병이 뭔지는 일본 만화 [[타임슬립 닥터 진]] 문서 인물 항목 참조). 하지만, 사이고라고 판단한 것은 고환이 부풀어 오른 것만 본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싸우다가 오른쪽 팔꿈치에 칼 맞은 흉터도 확인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서, 그 시체는 사이고 다카모리 본인일 확률이 높다.[* 국내 기생충학계에서는 기행충 감염이 고환 비대화의 원인이었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우세하다. 풍토병이라는 것도 모기에 의한 전파가 많기 때문.[[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5426035/pdf/main.pdf|#]] ] 둘째, 동상이 우에노 공원에 있는데, 우에노 공원은 메이지 정부가 조성한 곳으로 사이고는 정부에 반란을 일으킨 역적인데 사후 사면되고 동상이 세워진다. 그 친동생과 아들도 메이지 정부의 고위 관료로 임명되었다. 이런 것에서 서남전쟁은 불만을 가진 사족(士族) 세력을 처단하기 위해 반란을 부추기고, 사이고는 이를 알면서도 협조했다는 주장이다. 즉, 메이지 정부와 사이고 다카모리가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였다는 음모론이다. 그래서 사이고는 죽지않고 러시아 시베리아로 갔고, 메이지 정부는 그가 죽은 걸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생존설 중 가장 막나가는 것으로 사이고 다카모리가 '''암암리에 안중근을 지원하여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했다'''는 소위 사이고 다카모리=[[김두성]] 설도 있다. 안중근이 자신의 상관이라고 밝힌 김두성이 워낙 미스터리한 인물이라 이런 설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으나, 이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학자는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